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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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는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이 공동 작곡한 보사노바 곡이다. 이 곡은 196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초연되었으며, 1964년 스탄 게츠, 주앙 질베르투, 아스트루드 질베르투가 참여한 영어 버전으로 발표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헬로 이네이다 메네제스 파이스 핀토(헬로 피네이루)라는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았으며,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로 꼽히며,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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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 [음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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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정보 | |
제목 |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
원제 | Garota de Ipanema (포르투갈어) |
영어 제목 | The Girl from Ipanema |
종류 | 싱글 |
장르 | 보사노바 재즈 삼바 이지 리스닝 라운지 음악 쿨 재즈 |
언어 | 포르투갈어, 영어 |
길이 | 2분 44초 (라디오 편집 버전) 5분 24초 (음반 버전) |
레이블 | 버브 |
참여 인물 | |
아티스트 | 스탠 게츠, 주앙 지우베르투 |
작곡가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작사가 |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포르투갈어 가사) (영어 가사) |
프로듀서 | 크리드 테일러 |
음반 정보 | |
음반 | Getz/Gilberto |
B-사이드 | 바람에 불려 (Blowin' in the Wind) |
발매일 | 1964년 5월 |
녹음일 | 1963년 3월 |
녹음 장소 | A&R 레코딩, 뉴욕 시 |
차트 성적 | |
Billboard Hot 100 | 5위 |
Billboard Easy Listening | 1위 |
전영 싱글 차트 | 29위 |
기타 정보 | |
라틴 그래미 명예의 전당 헌액 | 2001년 |
미국 의회 도서관 국가 녹음물 등록소 등재 | 2004년 |
샘플 음원 | |
뮤직 비디오 | |
앨범 버전 | The Girl from Ipanema (album version) 유튜브 영상 |
싱글 버전 | The Girl from Ipanema (single version) 유튜브 영상 |
2. 역사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작업 중이던 뮤지컬 코미디 ''비행선''을 위해 이 곡이 작곡되었다. 원래 제목은 "Menina que Passa"("지나가는 소녀")였으며, 첫 소절은 달랐다. 조빙은 이파네마의 바랑 다 토르 거리의 새 집에서 피아노로 멜로디를 작곡했고, 모라이스는 리우데자네이루 근처 페트라폴리스에서 가사를 썼다.[12]
1962년 8월 2일부터 45일 동안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의 나이트클럽 "오 봉 구르메"에서 "엔콘트루"라는 쇼가 열렸다. 여기서 조빙, 주앙 지우베르투, 모라이스 세 명이 함께 이 곡을 처음 발표했는데, 이 세 명이 함께 공연한 것은 이 쇼가 유일하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는 보사노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블루스와 틴 팬 앨리의 영향도 받고 있다.[12] 곡이 연주되는 조는 녹음에 따라 다른데, 페리 히베이루의 첫 녹음 버전은 G 장조였지만, 대부분의 브라질 공연은 D♭를 사용하고, 미국 버전은 F를 사용한다.[12] 포르투갈어 가사는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가, 영어 가사는 Norman Gimbel|노먼 짐벨영어이 작사했다.
1963년 엘렌코 레이블에서 모라이스의 리더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이는 보사노바 명문 레이블 "엘렌코"의 첫 번째 앨범이었다.
최초의 상업적 레코딩은 1962년 페리 히베이루에 의한 오데온 음반이었다. 조빙과 모라이스는 이후 여러 라이브와 앨범에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다시 불렀다.
조빔과 모라이스는 1957년부터 함께 작업하며 보사노바 운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조빔의 재능을 독점하려 했던 모라에스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싶었던 조빔의 의도가 엇갈리면서, 이 곡을 마지막으로 콤비는 해체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은 모라에스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2. 1. 영문 버전
조앙 지우베르투,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스탄 게츠가 뉴욕에서 녹음 세션을 진행하던 중 영어 버전 제작 아이디어가 나왔다. 노먼 김벨이 영어 가사를 썼고, 조앙의 아내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가 영어를 잘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훈련된 가수의 매너리즘이 없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 곡에 완벽하게 어울렸다.[13] 그러나 아스트루드는 크레딧이나 저작료를 받지 못했고, 그녀의 파트에 대해 120USD만 받았다.[14]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는 버브 레코드에서 발매된 앨범 『'''겟츠/질베르투'''』에 수록된 버전이다. 1963년 3월, 스탄 게츠(테너 색소폰), 주앙 지우베르투(기타, 포르투갈어 보컬), 안토니오 카를루스 조빙(피아노),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영어 보컬)는 뉴욕의 A & R Recording|A & R 레코딩 스튜디오영어에서 이 작품을 녹음했다.[36]
아스트루드는 처음에는 노래할 예정이 없었고, 남편 주앙을 따라 스튜디오에 왔다가 우연히 노래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는 브라질에서 약간의 가수 활동 경험도 있었기에 완전 초짜는 아니었다. 아스트루드 본인이 직접 홍보했고, 상업주의에 능한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가 영어를 할 수 있고 노래도 할 수 있는 아스트루드의 상업적 가치를 계산하여, 선전 효과를 노리고 "우연히 참여한 해프닝이었다"는 설정을 만들었다(주앙 지우베르투는 영어를 할 수 없었다).
『'''겟츠/질베르투'''』는 녹음 1년 후인 1964년 3월에 발표되었다.[35] 같은 해 5월, 주앙의 포르투갈어 노래 부분을 (싱글 버전에 수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잘라내고 나머지를 이어붙여 싱글로 발매했다. B면은 게츠의 1964년 앨범 『'''Reflections (Stan Getz album)|리플렉션스영어'''』에 수록된 「바람에 실려」였다.[37] 영어 버전 "이파네마의 소녀"는 같은 해 7월 18일부터 7월 25일까지 2주 연속 빌보드 핫 100 5위를 기록[41][42]했고, 이지 리스닝 차트에서 1위를 기록, 그래미상 최우수 레코드상을 수상했다.
게츠는 보사노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타고난 오만한 성격 때문에 주앙이나 아스트루드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녹음 후 게츠가 테일러에게 "아스트루드에게는 갤러를 주지 마라"라고 명령했다는 일화가 있다). 주앙 역시 게츠의 횡포한 태도와 보사노바에 대한 몰이해, 테일러의 비즈니스 우선주의적인 처사에 매우 불쾌해했다.
3. 곡의 영감
이 노래는 이파네마에 살던 17세 소녀 헬로 이네이다 메네제스 파이스 핀토(현재는 헬로 피네이루로 알려짐)에게서 영감을 받았다.[17] 그녀는 매일 벨로주 바-카페(현재는 '가로타 지 이파네마'로 이름이 변경됨)를 지나 해변으로 가곤 했다.
모라에스는 그녀를 "어린 카리오카의 전형"이자 "빛과 은총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라지는 젊음의 감정을 담고 있는 존재"라고 묘사했다.
조빔과 모라에스는 1957년부터 콤비를 이루어 작사 및 작곡을 해오며 보사노바 운동을 이끌었다. 다만, 조빔의 재능을 아껴 그 존재를 독점하려 했던 모라에스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싶어 했던 조빔의 의도는 점차 엇나가게 되었고, 이 "이파네마의 소녀"를 마지막으로 콤비는 해소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우정 자체는 모라에스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당시 조빙, 모라이스 등 보사 노바 아티스트들은 리우데자네이루 이파네마 해변 근처에 있던 바 "벨로주Veloso|links=nopt"에 자주 모여 술을 마셨다. 이 바 근처에 살던 엘로이자 피네이루[39]가 어머니의 담배를 사러 종종 들렀는데, 그녀는 170cm의 키에 몸매가 좋은, 동네에서도 유명한 미소녀였다.
조빙과 모라이스는 모두 여자를 좋아했으며, 특히 모라이스는 생애에 9번이나 결혼했을 정도로 호색가였다. 그들은 엘로이자의 걷는 모습에 눈길을 주었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파네마의 소녀"를 만들게 되었다. 조빙과 엘로이자는 나중에 "상봉"을 했다. 미모로 성장한 엘로이자 본인은, 곡의 히트 당시 자신이 모델임을 알지 못한 채 들었다고 한다.
조빙과 모라이스가 벨로주 가게 안에서 즉석으로 곡을 만들었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지만, 실제 작사·작곡 자체는 각자의 자택에서 어느 정도 기간을 거쳐 이루어졌으며, 전설과는 약간 다르다. 작곡의 계기가 된 바 "벨로주"는, 나중에 이 곡에 맞춰 "가로타 지 이파네마"로 개칭되었으며, 2007년 현재에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3. 1. 법적 분쟁
2001년, 이 노래의 저작권 소유자(작곡가의 상속인)들은 엘로이자 이네스 메네지스 파이스 핀투(피네이루)를 상대로 그녀의 부티크 이름(Garota de Ipanema)에 노래 제목을 사용한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서 그들은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Garota de Ipanema)로서의 그녀의 지위가 법적으로 그들에게 속한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31][32] 여론은 피네이루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작곡가인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과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피네이루를 진정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Garota de Ipanema)로 지명한 보도 자료는 그들이 이 칭호를 그녀에게 부여하려 했다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법원은 피네이루의 손을 들어주었다.[33]별도의 법적 분쟁에서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는 구운 감자칩 광고에 이 노래를 사용한 것에 대해 상표권 침해로 프리토-레이를 고소했다. 지우베르투는 1964년 녹음의 엄청난 성공과 그 후 그녀의 빈번한 "이파네마" 공연의 결과로, 그녀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로 알려지게 되었고 대중은 1964년 녹음과 그녀를 동일시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그 결과 1964년 녹음에 대한 상표권을 얻었다고 주장하며, 이는 대중이 그녀를 가수로 지칭하는 표지로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녀는 프리토-레이가 그녀의 허락 없이 광고에 1964년 녹음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34] ''올리베이라 대 프리토-레이''(2001) 사건에서 그녀의 주장은 미국 제2 연방 항소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34]
4. 가사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가 포르투갈어 가사를, Norman Gimbel|노먼 김벨영어이 영어 가사를 각각 작사했다. 이 곡은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등에 이어 세계적으로 많이 커버된 팝송 중 하나로, 보사노바 넘버로서는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모라에스가 쓴 포르투갈어 원 가사는 해변을 걷는 소녀에게 닿을 수 없는 마음을 슬프게 읊는 내용으로, 그의 서정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노먼 김벨의 영어 가사는 원 가사의 의미를 따르지만, 격조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4. 1. 대한민국에서의 수용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팝과 재즈의 영향으로 보사노바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카페 문화의 확산과 함께 보사노바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역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러 한국 가수들이 이 곡을 번안하거나 리메이크하여 불렀으며, 각종 광고와 드라마, 영화 등에도 삽입되어 친숙한 곡이 되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곡이 다시 한번 주목받기도 했다.5. 유산
이 곡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작업 중이던 뮤지컬 코미디 ''비행선''을 위해 작곡되었다.[12] 원래 제목은 "Menina que Passa"("지나가는 소녀")였으며, 첫 번째 소절은 달랐다. 조빙은 이파네마의 바랑 다 토르 거리의 새 집에서 피아노로 멜로디를 작곡했고, 모라이스는 6년 전 "Chega de Saudade"("노 모어 블루스")를 썼던 것처럼 리우데자네이루 근처 페트라폴리스에서 가사를 썼다.[12]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등에 이어 세계적으로 많이 커버된 팝송 중 하나로, 보사노바 넘버로서는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는 2016년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여러 측면으로 인정받았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마스코트는 대중 투표를 통해 이 곡의 공동 작곡가들의 이름을 따서 각각 비니시우스와 톰으로 명명되었고,[19] 개막식에서는 이 노래와 오스카 니마이어의 건축물을 주제로 한 세그먼트가 있었다. 조빔의 손자 다니엘 조빔은 이 세그먼트에서 이 노래를 불렀으며, 브라질 슈퍼모델 지젤 번천도 출연했다.[20][21] 스포티파이는 개막식 이후 며칠 동안 이 곡이 하루 4만 번 스트리밍(1200% 증가) 되었다고 보고했으며, 미국에서는 다음 주에 이 곡이 ''빌보드''의 월드 디지털 송 차트에서 5위에 올랐다.[22][23]
다음은 이 곡을 커버한 아티스트 및 앨범의 일부이다.
아티스트 | 앨범 | 발매 연도 | 비고 |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이파네마의 소녀 (The Composer of Desafinado, Plays영어) | 1963년 | 기악곡. 조빙은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조류 (Tide영어) | 1970년 | 데오다투의 편곡에 의한 기악곡.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Terra Brasilis영어 | 1980년 | |
낸시 윌슨 | (How Glad I Am영어) | 1964년 | [43] |
페기 리 | (In the Name of Love영어) | 1964년 | [43] |
채드 & 제레미 | Chad & Jeremy Sing for You영어 | 196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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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사다오 | 이파네마의 소녀 | 196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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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리사 | Amigos영어 | 199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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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차트 및 인증
이 곡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작업 중이던 뮤지컬 코미디 ''비행선(Dirigível)''을 위해 작곡되었다. 원래 제목은 "Menina que Passa"("지나가는 소녀")였으며, 첫 번째 소절은 달랐다. 조빙은 이파네마의 바랑 다 토르 거리의 새 집에서 피아노로 멜로디를 작곡했다. 모라이스는 6년 전 "Chega de Saudade"("노 모어 블루스")를 썼던 것처럼 리우데자네이루 근처 페트라폴리스에서 가사를 썼다.[12]
조앙 질베르투,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 스탄 게츠와 함께 뉴욕에서 녹음 세션을 진행하던 중 영어 버전의 제작 아이디어가 나왔다. 노먼 김벨이 영어 가사를 썼고, 조앙의 아내 아스트루드 질베르투가 노래를 불렀다. 훈련된 가수의 매너리즘이 없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 곡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으로 입증되었다.[13] 그러나 그녀는 크레딧을 받거나 저작료를 받지 못했고, 그녀의 파트에 대해 단지 120USD만 받았다.[14]
프랭크 시나트라는 1967년 앨범 ''프랜시스 앨버트 시나트라 &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에서 조빙과 함께 이 곡을 녹음했다.[15] 엘라 피츠제럴드는 1981년 파블로 투데이에서 발매한 브라질 음악 2 디스크 세트 ''엘라 아브라사 조빙''에 이 곡을 녹음했다.